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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선 (당시20세) 화 장 1967년 10월 16일 강원도 홍천 출생 1983년 동인천 중학교 졸업 1985년 한국릴레이 근무 1987년 백마교회 문화잔치 2기생 졸업 1987년 8월 1일 백마교회 노동자들과 함께 인천지역 노동자 여름수련회 참여 물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운명 |14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가정 사정을 생각하여“나도 돈을 벌겠다”며 진학을 포기한 채, 낯설고 낯선 공장문을 16살의 어린 손으로 두들겨야만 했다. 동지는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의 공장생활에도 꿋꿋하게 생 활했는데‘백마교회’문화잔치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면서 우리 사회와 노동자 의 현실에 대해 올바르게 알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특히 동지는 4.19강연을 듣고는“저렇게 어린 국민학생도 악의 무리에 항거해 싸워왔는데 나는 무엇을 했나”라고 말하였으며, 자신이 너무 모른다는 생각으로 좀더 알기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또‘테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이라는 박노해씨의 <진짜 노동자>를 보고는“그럼 나도 얼빠진 놈이 네”라고 겸연쩍게 웃기도 하였다. 동지는 ’87년 6월 투쟁에 참가하여 유인물을 배포하고‘독재타도 호헌철폐’를 목청높이 외쳤으며, 독재정권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동지는 6월 18일 최루탄 추방대회에 참석 하면서 청천동 일대를 장악하면서 해방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였으나, 폭력경찰 의 무차별 폭력에 치를 떨었다. 이런 싸움의 과정들 속에서 그는‘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고, 7월 12일‘이한열 추모 및 구속자 전원석방 촉구대회’가 개최되던 날 경찰의 폭력진 압에 항의하며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농성을 하며 6일간 전투조로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이렇게 투쟁하고 학습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가던 동지는 어머 님의 병환과 군입대를 앞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지들과 함께 하기 위해‘인기 노’수련회에 참석하였다가 도중에 발생한 물놀이 사고 당시 동지를 구하기 위하 여 기꺼이 한 목숨을 바쳤다. 동지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진실된 동지애는 지금도 남 은 동지들에게 커다란 감동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끝내살리라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