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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 남원면 서귀포에 본부를 두고, 인근 여러 거점에 부대를 파견해 주둔했다. 당시 남원읍 신례리 소재 수악교 윗 지경에도 일부 부대가 주민들을 동원해 수악계곡 주둔소 를 건립하고 주둔했다. 그러나 2연대 병력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9년 8월 제주도에서 철수했는데 이곳 주둔소에 있던 병력도 당시 같이 철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 현황 수악계곡 주둔소는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해 있어 들어가는 길이 없고 찾기 힘들다. 제1횡단도로 상의 신례천 수악교에서 오른편 높은 동산을 넘어간 뒤 300m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성담이 나온다. 현재 망루 2곳과 성담이 잘 남 아 있고, 안쪽에는 막사로 이용했음직한 돌담도 보인다. 당시 주둔소는 이렇게 한 쪽 벽을 계곡에 의지해 많이 세웠는데 당연히 계곡 방향에는 성담을 쌓지 않았다. 이곳 주둔소는 내·외성 이중구조였고, 성담은 높이 1.5~2m 내외, 길이 37~69m, 면적 약 2,100㎡(약 635평) 규모였다. 성담쌓기는 다른 곳에 비해 다소 허술한 편 이다.(한상봉, 『제주4·3 시기 군·경주둔소』, 2018, 69쪽 참조) 5) 역사현장 - 항애골 가.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로 75 (신례리 346-3번지) 일대 나. 개요 이곳 항애골은 신례1리와 2리 경계 지점, 신례2리 지경이다. 항애골 지명은 학 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48년 12월 12일, 소개령에 따라 신례1구를 나서 2구로 가던 주민들은 항애골 에서 기다리고 있던 토벌대와 조우했다. 토벌대는 주민들을 무차별 구타하기 시작 했다. 그 매에 양기득(30)이 처참하게 학살됐고, 양남석(27세)과 양중범(23세), 양 완주(18세), 송만춘(여, 23) 4명은 총살됐다. 그 후 토벌대는 명단을 불러가며 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