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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건이 부쩍 늘었다. 1948년 11월 25일, 토벌대는 오달존 2 이 입산했다며 그 아내 (27)와 아들(10)을 총살했다. 토벌대는 1948년 12월 3일 밤부터 4일 새벽까지 무장대의 습격으로 세화리와 평대리, 인근 하도리, 상도리, 종달리가 많은 피해를 입자 12월 5일부터 민·군·경 합동 구좌면 대토벌작전을 벌였다. 이날, 상도리에는 거센 피바람이 몰아쳤다. 먼 저 오달존과 정권수의 가족이 자택에서 총살됐다. 그리고 많은 주민들이 연두망 으로 끌려가 총살됐다. 토벌대가 입산자를 빌미로 그 직계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무차별 총살하는 학살극을 벌였던 것이다. 당시 오달존은 입산해 활동하고 있었 고, 정권수 3 역시 남로당 구좌면당 책임자로 산에서 활동했다. 다음은 토벌대에 주민들이 학살된 상도리 주요 사건이다. 1948년 11월 12일: 오달용이 세화리 다랑쉬굴 부근에서 토벌대와 교전 중 사살됨 12월 5일: 토벌대가 기습해 입산자가족이라며 오씨 가족을 총살하고 집 을 불태움. (상도리-학살터-오씨 집터, 참고) 이어 정권수 가족 과 친척을 학살함4 12월 24일: 부순석(56, 남)은 성문보초를 서다 작전 중인 경찰차량에 치어 사망함 1949년 1월 10일: 오만학(56, 남) 부부를 경찰이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연행 해 고문하다 지금의 구좌읍사무소 근처에서 총살함 2) 오달존(30, 남)은 1948년 입산 후 행방불명됐다. 그는 이날 아내와 큰아들이 학살됐고, 12월 4일에 는 모친과 다른 두 자녀, 형, 조카들이 총살됐다. 3) 정권수(38)는 한라산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5명의 무장대원 중 한 사람으로 1956년 4월 3일 송당리 체오름에서 경찰토벌대에 총살됐다.(『제주신보』, 1956. 4. 5.) 그의 가족 또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의 자녀들과 부친, 두 분의 형님, 동생, 조카, 그리고 일가친척까지 학살됐다. 그의 아내는 처가에 서 부산으로 피신시켜 학살을 면했다. 그의 시신은 친척이 인도하려 했으나 처음에는 경찰이 거부 해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경찰이 시신을 내다버리자 경찰 몰래 옮겨와 토롱했다 나 중에 상도리로 이장했다. 4) 이날, 경찰의 학살극은 오씨 집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정권수의 가족과 친척들로 이어졌다. 경찰은 정성종(70, 남)의 집에 들이닥쳐 정씨 부부와 두 손자를 총살하고, 세화지서 지시로 벌목을 다녀오 던 장남 정범수(55, 남)를 상도리 셋질목 도로에서 학살했다. 이어 평대국민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다른 아들 정석수(14, 남)도 불러내 총살했다. 또한 정효종의 부인과 아들을 총살했다. 그리고 며칠 후인 12월 10일, 이번에는 정효종(59, 남) 부자를 학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