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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까 허멍, 모멀죽 쑤엉 먹고 가렌. 겐 우린 거 먹고 내려간 동네 빈집이서 하루 살안 이 젠 냇창에 잇인 궤로 간 거라. 그때 궤엔 사름덜이 좀 잇언 날이 밝아가난 밥도 허곡 해. 난 애기 부려두고 세수라도 허젠 내창으로 갓주. 곧 파지직 탁! 소리가 나. 보난 냇바우 에서도 총을 쏩곡 우에서도 총을 쏩곡 갈 데가 엇어. 난, 아이 놔둰와부난 허위허위 올 라갔주. 간 보난 몬딱 도라나불언 아무도 엇어. 그 궤엔 우리 다섯 살허고 두 살난 애기 만. 그러고 예촌사름, 애기 데린 사람이 하나 셧고. 그 사름은 젊언. 스물 다섯 살인디 아들 다섯 살 난 것 데리고. 경헨 이제 난 이 아이들 둘 업곡 허연 냇바이로 올라갔어. 곧 응원대가 바짝 들어산 손들어라! 손들어라! 해. 난 애기 담요, 호랑이 그려진 담요로 애기덜 싼 시키는 디 간 앉안. 좀 잇이난 저디 도망간 사름덜을 다 심어왔어. 겐디 혼 사 름은 스물다섯 예촌 여자, 아까 말헌 정선생, 정석봉이 각신디… 애기 업곡 도망가가난 콱 찔러부런. 피가 작작 노려와. 여자가 말허였어. ‘나 죽거든 서귀포 효돈리 오용국이 네집더레 이 아이랑 보내줍서! 보내줍서!” 군인덜은 이제 그 사름을 뻥허게 쏘아부러. 죽엇주. 예촌 사름이라. 그러고, 그때 우릴 몬딱 심어단 앚져놘게 보난 열네 사름이라. 경헨 이제 그 사름덜을 데련 예촌가름을 내려오란게 냇 어염에 앉으렌 해. 허연 보난 그 사름덜… 하이고! 서귀포 민보단을 다 데련와노난 천 명이 넘어. 군인이 일곱 명, 순경 은 서장이 금테두른 사름허고 허연 스물 하난가? 그때 첨, 천 명이 넘는 사름들이 토벌 을 갔단 말이우다.” 정신숙이 이날 본 토벌대는 군인이 일곱 명, 그리고 경찰이 20여명, 민보단원이 1,000여명 되는 대규모 인원이었다. 당시 서귀포 토벌대장은 강성건이었다. 다 현황 서성로에서 이승이악으로 가는 입구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축사가 보인다. 그 곳에서 서쪽 숲으로 들어가면 신례천이 나오고 화생이궤가 바로 눈앞에 드러난 다. 현재 기도처로 사용되고 있으며, ‘奉請山王大神之位’ 비와 ‘준공 一九七二년 十 二月 十六일 선광사 신례신도 일동’이라 쓰인 표석도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