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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구좌면 찰관들은 자신들이 소지했던 포승줄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우발적으로 저지른 사건이 몰고 올 후유증을 심각하게 여긴 청년들은 피신하기 시작 했다. 부상당한 경찰관들은 마을 주민들에 의해 마차에 실려 세화지서로 옮겨졌다. 경 찰은 곧 비상을 걸었다. 이때부터 경찰과 집회참석자 사이에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계 속됐다. 미군 주간정보요약서는 ‘6월 6일 경찰관이 성산에서 북쪽으로 2마일 떨어진 구좌면 해안의 한 예인선에서 열리고 있던 남로당의 불법모임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폭행당하고 포승줄로 묶였다. 사건 책임자들은 체포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경찰당국은 6월 16일 종달리 사건 관련 수배자가 71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결국 수배자 71명 중 42명이 검거돼 재판에 회부됐다. 사건 주모자 부옥만에게는 가장 무거 운 징역 4년이 선고됐다. 그에게는 포고령 제2호와 군정법령 제19호, 형법 제95·106 조를 적용, 공무집행 방해·소요·상해·불법체포죄 등을 물은 것이었다. 일부 자료에는 종 달리 사건으로 경찰관 2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부옥만의 4년 복역기간 중 살인죄나 폭행치사죄를 추가 적용한 적은 없다.” 그날 이후, 경찰은 사건 주모자를 검거하는데 혈안이 됐고, 종달 청년들은 마을 을 떠나 피신했다. 그중 일부는 배를 타고 다른 지방이나 일본으로 도피한 사람도 있었다. 그날 집회는 두문포 김두기 집 마당에서 열렸다. 그 후 종달 주민들은 이 사건이 원죄가 돼 걸핏하면 도피자 가족이나 무장대 가 족 명분으로 이곳저곳에서 토벌대에 학살됐다. 두문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