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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에는 나무와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다. 3) 역사현장 <두문포구> 가. 소재지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2281 (종달리 484-9번지) 일대 나. 개요 종달리 4·3은 1947년 6월 6일 발생한 6·6사건으로 시작된다. 『제주4·3사건 진 상조사보고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4 “종달리 사건은 1947년 6월 6일 민청의 불법집회를 단속하던 경찰관 3명이 오히려 집회 참석 청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이날 밤 8시를 전후 해 구좌면 종달리 바닷가에서는 마을 청년 2백 명가량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 민청집회 가 열리고 있었다. 미군정은 5월 16일 행정명령으로 민청을 해산했는데, 중앙 민청에 서는 5월 21일부터 제2차 미·소 공동위원회가 재개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6월 5일 합법단체로 민애청을 조직, 군정청에 등록했다. 종달리 민청은 이런 과도기에 민청의 앞으로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이날 집회를 소집한 것이다. 이런 집회 개최 정보를 입수한 세화지서 소속 김순영(金順影), 황종욱(黃鍾郁), 최한 수(崔漢洙) 경찰관 3명은 단속차 집회현장에 나타났다. 집회 참석자들이 동요하자 종달 리 민청 부위원장인 부옥만(夫玉萬)이 나서서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으니 도망칠 이유 가 없다’면서 대중을 선동했다. 곧이어 청년들과 경찰관 사이에 몸싸움이 시작됐고, 수 세에 몰린 경찰관들이 급한 김에 바다에 뛰어 들었다. 부옥만은 해초를 긁어모으는 갈 고리가 달린 장대로 경찰관들의 제복 옆구리를 걸고 잡아당겼다. 결국 실신상태의 경 4)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2003, 129~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