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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 남원면 나. 개요 신례1구 주민들은 1949년 4월께 신례2구로 소개갔다 돌아와 마을을 둘러 성 을 쌓았다. 성은 2중 구조로 안성과 바깥성이 있었다. 안성 높이는 2.5~3m정도 였고, 밧성은 2m 높이로 주민 모두가 동원돼 쌓았다. 동문의 위치는 현재 버스정 류소 북쪽에 있었다. 그 후 확장해 2차로 성을 쌓을 때는 북쪽 라인은 그대로 두 고 학교가 성안에 들어오게 남쪽으로 신례국민학교까지 확장해 쌓았다. 4·3성은 1차~4차까지 확장됐다. “신례1리는 6개월이 넘는 기간을 공천포 모래판 위에 가초가(假草家)를 짓고 그 속에 서의 눈물겨운 생활을 하였다. 신례1리 원 마을로 복귀하게 되었으나 경비 관계로 완 전 복구는 할 수 없었다. 치안유지상 신례1리 서가동(西街洞)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약 300m를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 동원되어 성담으로 쌓았다. 그 속에서 역시 자기 집 없는 사람은 성안에 가초가(假草家)를 지어 살았다. 밤에는 젊은이는 물론 노인과 처 녀들까지도 창을 들고 마을 경비를 담당했다. 낮에도 성문 네 곳에서 경비를 서서 도민 증 없는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였다. 2차 확장으로 남쪽 현 중산간도로 북변을 경계로 성을 쌓고, 경찰파견소를 현 리사무소 자리에 두어 마을에 치안과 경비를 맡았다. 3차 신례1구 4·3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