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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남원면 8. 신례리 신례리는 조선 말기 예촌(禮村)으로 불리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신례리로 개 칭됐다. 그 후 신례리는 지금의 중산간 도로를 분계선(分界線)으로 하여 북쪽은 1 구, 남쪽은 2구로 분할됐는데 당시 2구에는 공천포와 부전동, 상방동, 그리고 종 남동이 포함됐다. 당시의 가구수(家口數)는 1구가 170∼180호(戶)였고 2구는 120여 호 정도였다. 그중 2구는 공천포가 56호, 부전동 34호, 상방동 16호, 종낭 동 13호였다. 그러다 신례리는 1949년 9월 1일, 도제 개편에 따라 지금의 변전 소 뒷길, 즉 상방터와 종낭굴을 잇는 도로를 기준으로 북쪽은 신례 1리, 남쪽은 신 례 2리로 확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례리는 한라산 남쪽 마을로 동쪽은 위미리, 서쪽은 하례리와 이웃하고 있다. 북쪽은 한라산에서 완만한 경사가 흐르며 이승악과 수악, 흑악, 성길악 같은 여러 개의 군소 산악이 이어지고 수악 서쪽에는 천연기념물인 왕벗나무 자생지가 있 다. 하천은 마을 서쪽에 신례천이 있는데 이 신례천 상류는 제1횡단도로변의 수 악계곡으로 이어진다. 신례1구 주민들은 4·3을 거치면서 마을의 똑똑한 젊은이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고 말한다. 신례1구는 해안마을과 비교적 가깝다. 1948년 11월 중순께 중산간 마 을들이 초토화되고 주민들은 소개돼 해안마을로 내려올 때도 별다른 일 없이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