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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보복이 반복되며 많은 희생을 치렀다. 1948년 11월 18일 밤, 무장대는 종달리를 습격해 경비를 서던 채정옥 1 과 김호준(24, 남)을 납치했다. 다음날 아침 습격 소 식에 출동한 토벌대는 밤에 경비를 섰던 윤학석(33, 남)과 채두원(33, 남)을 총살 하고, 마을을 수색해 고기찬(95, 여)과 김정생(40, 여), 박송양(42, 여)을 사살했 다. 무장대의 보복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세화리에서 열린 무장대 습격 대책회의 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고용기(25, 남) 등 5명이 미리 매복했던 무장대에 납치된 뒤 살해됐다. 이들 중 김석호는 살아돌아왔으나 나중에 토벌대에 총살됐다. 토벌 대는 곧 그 보복으로 종달리의 도피자 가족을 세화지서에 감금했다. 그러던 12월 4일 새벽, 무장대가 세화리를 공격하고 돌아가면서 종달리를 기습해 종달리 공회 당에서 강청삼(37, 남) 등 민보단원 10명을 사상케 했다. 세화지서는 가만있지 않 았다. 곧 보복에 나서 지서에 수용돼 있던 강영선(58, 여) 등 종달 주민 23명을 세 화지서 옆 연두망으로 끌고가 총살했다. (상도리-학살터-연두망(연두골), 참조) 종달 주민들은 점차 사태가 심각해져가자 산으로 피신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 정에서 12월 18일, 구좌지역 대토벌로 다랑쉬굴에 숨어있던 종달 주민 강태용 (34, 남), 고두만(21, 남), 고순경(21, 남), 고순환(27, 남), 고태원(26, 남), 박봉관 (32, 남), 함명립(20, 남) 7명이 학살되기도 했다. (세화리-은신처·학살터-다랑쉬 굴, 참조) 1949년에 들어서도 토벌대의 학살은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2월 10일, 토벌대는 현광운(70, 여) 등 12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다시 상도리 연두망에서 총살했다. 다음은 종달리의 주요 사건이다. 1948년 12월 7일: 김옥숙(21, 여)은 고순경의 처로 남편이 산으로 도피하자 성산 지서에 잡혀감. 그 후 경찰이 구덩이를 파게 한 후 총살함 12월 18일: 다랑쉬굴에서 종달리 주민 7명이 질식사 함. (이때 종달과 세화 주민 11명이 질식사 함) 이날 김석호(38) 종달리장은 김녕리 백 사장으로 끌려가 총살됨 12월 21일: 토벌대가 고봉규(48, 남) 가족 3명과 현봉오(44, 남) 부부 등 5 1) 다랑쉬굴사건의 증언자인 채정옥은 이날 납치됐다 약 6개월 후 산에서 내려와 귀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