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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 구좌면 9. 종달리 제주시의 동쪽 끝 마을 종달리는 동동과 동중동, 서동, 천수동, 중동의 다섯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해안마을이다. 동쪽은 우도면, 서쪽은 하도리·상도리·세화 리·송당리, 남쪽은 성산읍 시흥리·수산리와 경계를 이룬다. 보통 종달(終達)이란 명칭은 ‘통달함을 마쳤다,’ 그리고 마을의 상징인 지미(地尾)봉은 ‘땅의 끝·땅의 꼬 리’로 해석해 종달리를 제주시의 끝 마을로 여긴다. 마을 안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전통시대에는 염전이 유명했고, 담수가 풍부해 도내에서는 드물게 논농사도 이뤄 졌다. 종달리의 4·3은 1947년 6월 6일 일어난 6·6사건으로 시작된다. (종달리-역사 현장-두문포구, 참조) 이 사건으로 종달리는 일찍부터 경찰의 주목을 받게 돼 이 른 시기에 많은 청년들이 다른 지방이나 일본으로 피신했다. 또한 이 사건은 4·3 기간 내내 종달 주민들의 발목을 잡으며 학살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1948년 가을께부터 종달 주민들은 마을 어귀에 소년을 빗개세워 토벌대의 마을 진입을 감시하다 토벌대가 들어온다 싶으면 마을 주변으로 바삐 피신했다. 이때까 지는 주로 마을 위쪽 고지된밧에 있는 크고 작은 궤에 피신했다 돌아오곤 했다. 토벌대는 1948년 11월 중순 이후 대토벌기 들어 종달 주민들에 대한 학살극을 본격적으로 자행하기 시작했다. 종달 주민들은 무장대와 토벌대 양측의 습격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