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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2025년 4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씨가 재작일 하오 12시경 그의 별실(別室)과 함께 막 옷을 벗고 취침하려 할 무 렵에, 갑자기 양복을 입은 누구인지 모르는 3명이 칼 을 들고 돌입(突入)하여, 가슴과 등 여러 곳을 난자 (亂刺)하여 중상을 입고 땅에 혼절(昏絶)한 바, 그의 집 청직(廳直)이 김가(金哥)가 내실 에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괴이히 여겨 탐문하고자 하니, 갑자기 양 복 입은 3명이 안에서 급히 나와 놀라 누구냐 하고 물은 즉, 이들이 역시 칼로 김가를 타격하여 귀와 어깨에 부상을 입히고, 곧바로 도 망갔다. 이 군부대신은 한성병원 에서 치료중이나 부상이 극중(極 重)하여, 위험(危險)이 팔구분(八九 分)이라더라. - 『대한매일신보』 1906년 2월 18일, ‘이씨 봉자(李氏逢刺; 이씨 자객을 만나다)’ 기산도 일행은 인적이 끊어진 골목으로 사라졌다. 이들이 사라 진 뒤 곧 이근택의 집은 일대 소동 이 일어났다. 한국 군경을 비롯한 일본 헌병대 및 순사들이 즉각 출 동하였으나, 그들은 13곳을 난자 당한 이근택과 놀라 실신한 첩만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현장에 기 산도가 떨어트린 가발이 단서가 되어 결국 체포되었다. 이근택은 한 달 이상 한성병원 특실에서 치료를 받은 뒤 퇴원 하여 기산도를 신문하였다. 이때 기산도는 “너희 오 적(五賊)을 죽이려는 이가 어찌 나 한사람뿐이겠느 냐. 단지 나는 너를 죽이려던 것이 서툴러 탄로 나게 된 것이 한스럽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의병 봉기를 결정한 기산도가 1904년 박인호 등과 의논한 뒤 청년 30여 명을 모아 일 본군을 습격한 장성군 진원면 고산 전경(광주일보 제공) 기산도 의사의 이근택 습격 보도 기사(『대한매일신보』 1906년 2월 23일자, 독립기념 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