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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구좌면 1948년 9월 29일 밤 9시께, 하도국민학교는 무장대의 습격으로 불에 탔다. 이 날 무장대는 5·6학년이 사용하던 동쪽 별관 2개 교실은 방화하지 않았다. 당시 하 도국민학교에는 3개 교실이 있던 목조기와의 서쪽 별관과 본관 교무실, 학습자료 와 악기 등을 보관하던 교실, 목조기와의 동쪽별관이 나란히 있었다. 교실은 모두 25평 정도의 크기였고, 교문은 현재의 위치와 같았다. 운동장과 학교 부지도 당 시와 지금이 별 차이가 없는 6천 평 정도였다. 6 하도국민학교 교사 고문찬(23, 남)은 1948년 4월 어느 날 자택을 급습한 무장 대에 납치돼 산에서 생활하다 다음해 초 토벌대에 연행됐다. 그는 1949년 6월 28 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감형돼 마포형무소 수감 중 행방불명됐다. 하도국민학교가 무장대에 소실된 몇 달 후인 1949년 3월께, 성산면 수산리에 주둔했던 충남경찰부대가 이곳에서 20여일 주둔했다. 하도 주민들은 서청의 횡 포가 너무 심해서였는지 이들 충남경찰부대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했다 기억하 고 있다. 하도 주민 임하남(남)은 무장대가 학교와 공회당을 불태우는 걸 목격했다고 증 언했다. “내가 그때 6살이었다. 학교는 무장대가 기습해 불태웠다.” 하도국민학교 일제강점기 하도국민학교 교악대 모습 6)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교육계 4·3사건 피해실태 보고서』,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