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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 구좌면 이날 학살된 스님은 이성봉(56, 남, 행원리 출신, 속명 이준구)으로 그의 유해는 고향 행원리로 옮겨졌다. 4·3희생자 신고서에는, “이준구, 1948년 11월 20일 소 를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순찰하는 군인들을 보고 겁을 먹어 금붕사 주위로 달아 났는데 군인들이 이 사람들을 찾다가 찾지 못하자 절을 지키던 성봉 스님을 발견 하고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사찰 밖으로 끌고간 후 총살함” 이라고 기재돼 있다. 토벌대는 이날 이성봉 스님을 학살하고 금붕사도 불태웠다. 당시 이 불로 요사채 는 전소됐고 대웅전은 반쯤 타다 남았다. 그 후 금붕사에는 1950년과 1978년 2 차에 걸쳐 복구작업이 진행됐다. 한편 금붕사의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하원리의 법화사나 삼양동의 원당사와 같 은 시기에 창건되었다가 1702년 이형상 목사 시기 폐사됐다고 전해진다. 그 후 일 제강점기인 1926년에 이성봉 스님이 재창건해 일제에 의해 왜곡된 불교를 바로 세우려 노력했다. 금붕사는 조선시대 초기 탱화인 오백나한상을 보유하고 있다. 수암스님(김수암, 1940년생, 현 금붕사 주지)은 이성봉 스님의 외손자이다. 그 는 할머니로부터 이성봉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수암스님의 기 억이다. “군인들이 무서워 제때 시신은 수습하지 못하던 시절이다. 겨우 군인들이 돌아가자 식구들은 스님의 총탄 구멍에 좌복 4 의 솜을 떼어다 그 안을 막았다. 그 리고 총탄으로 온 몸이 벌집이 되어버린 스님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고향인 행원 리 가족묘지로 가 봉안했다. 당시 어머니와 이모님이 대성통곡하던 소리를 잊을 금붕사 4) 절에서 앉을 때나 좌선할 때 자리에 깔고 앉는 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