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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5 구좌면 끌려가 경찰에 총살됨 8월 3일: 임양생(32, 여)은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남편 박봉관 (32, 남, 종달리, 다랑쉬굴 희생자)이 산으로 피신했다는 이유 로 성산포지서로 연행돼 고문치사함 11월 23일: 부원정(25, 남) 등 4명은 함덕 군부대에 잡혀가 함덕리 모살밭 에서 총살됨 11월 29일: 토벌대가 성산포 터진목에서 이성인(31, 여) 모녀 등 11명을 총 살함 (성산리-학살터-터진목, 참조)3 1948년 12월 3일, 무장대가 세화리를 습격한 이후 토벌대가 아이들과 여성, 노 인들을 학살터로 끌고가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단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였다. 1948년 12월 5일: 토벌대가 김성언(42, 여) 등 9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하도리 공회당에서 공개총살함. 이때 현도순(22, 여, 종달리 다랑쉬굴 증언자 채정옥 처)도 하도리에서 생활하다 함께 총살됨 (하도 리–학살터-하도리 공회당 옛터, 참조) 12월 6일: 고기옥(36, 남)은 세화지서에서 끌려나간 후 평대리 모살밭(현 읍사무소 자리)에서 총살됨. 오매옥(47, 여)과 현선평(48, 여)은 도피자 가족이라며 세화중 인근에서 총살됨 2) 현도선(玄道善, 36)은 당시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하다 고초를 겪 었고, 1993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그는 어느날 무장대가 집에 들어와 식량을 주지 않으면 가족 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쌀을 조금 내준 적이 있었다. 그 후 이 일을 탐지한 세화지서 경찰 이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그를 강제 연행했다. 그는 한동안 지서에 수용돼 있다가 1948년 6 월 1일 종달리와 시흥리 경계 부근 국도변의 소나무 밭에서 총살됐다. 이즈음, 집에서는 소식이 없 자 할아버지가 소를 찾으러 다닌다는 핑계로 이곳저곳을 물색해 다니다가 이곳 소나무에 목이 매달 린 채 총상을 입고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3) 장복순(1929년생, 여)이 11월 29일 학살에 대해 증언했다. “첫 소집날, 성산포로 불러서 다 갔는데 우린 못 가고 다음날 갔어. 차라리 첫날 갔으면 안 돌아가셨을지도 몰라. 다음날 간 사람들은 다 죽 여분거라. 우리 시어머닌 덩치도 작고 허니 그땐 밀물이라 물이 봉봉 들어서 끌려간 게 아닌가 해. 돌아가신 우리 성님이 백방으로 다녀도 시어머니 시체를 못 찾겠더라고 했어. 지금 서문동에 비석 들만 있어. 4·3사건 희생자들, 그때 비만 세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