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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하도리의 주민 학살은 1948년 5월부터 시작됐다. 무장대는 5월 23일, 하도리 를 습격해 마을리장이었던 임유현(55)과 이화만(27), 백일선(61) 등 마을 우익인 사들을 살해했다. 이 사건 일주일 뒤인 5월 31일, 이번에는 세화지서 주둔 응원경 찰대가 마을에 나타나 주민 6명을 지서로 연행해 지독한 고문을 가한 후 말미오 름 인근으로 끌고가 총살했다. (종달리-희생터-말미오름 앞쪽, 참조) 1948년 11월 28일, 토벌대는 18세 이상 80세까지의 하도 주민들을 성산포 군 부대에 집결하도록 한 후 도피자 가족이라며 감금했다. 그리고는 다음날인 11월 29일 주민 10여 명을 성산포 터진목에서 집단총살했다. 12월 5일에도 군토벌대 의 만행은 이어졌다. 이날 토벌대는 이틀 전 무장대의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주민 들을 마을공회당에 집결시켰다. 이들은 아이들과 여성 9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며 불러내 일렬로 세우고 앞 사람의 허리를 잡게 했다. 그런 다음 ‘M-1소총의 화력 을 확인한다’며 등 뒤에서 쏘아 집단학살하는 끔직한 학살극을 자행했다. 대토벌 시기, 하도 청년들과 주민 일부는 토벌대의 무차별학살을 피해 산간지 역으로 피신했다. 그중 1948년 12월 18일 벌어진 구좌면 대토벌작전으로 당시 피난주민들이 은신해 있던 다랑쉬굴이 발각돼 하도리 주민 김진생(52, 여), 부성 만(21, 여), 이성란(19, 여), 이재수(9, 남) 4명과 종달리 주민 7명이 토벌대가 피 운 연기에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세화리-은신처·학살터-다랑쉬굴, 참조) 또한 이 날, 송당리 지경의 가시남동굴에 숨어있던 손성언(30, 남) 등 19명도 발각돼 집단 학살됐다. (송당리-은신처·학살터-가시남동굴, 참조) 해녀항일운동의 고장 하도리는 4·3 시기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구좌면에서 가 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2연대 군인들은 남자의 국부를 자르고, 여성을 폭행하고, 할아버지와 손자를 뺨때리기 시키는 등 반인륜적인 행태를 자행했다. 다음은 하도리 주민들에 대한 주요 학살사건이다. 1948년 5월 23일: 무장대가 습격해 우익 성향의 주민 3명을 살해함. 임유현(55, 남)은 마을리장, 이화만(27, 남)은 대동청년 부단장, 백일선(61, 남)은 아들이 경찰이었음. 이들은 자택을 기습한 무장대의 죽창 에 찔려 사망함 5월 31일: 현도선(38, 남)2 등 6명이 종달리의 한머루(말미오름 골짜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