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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 구좌면 8. 하도리 하도리(下道里)를 옛 사람들은 별방(別防)이라 불렀다. 그 이름은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중종 5년(1510) 별방진(別防鎭)이 김녕에서 하도로 이전돼 건립된 데 에 기인한다. 하도리에는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이 있고, 현재 해녀박물관이 위 치해 있기도 하다. 청정지역 하도리의 생산물로는 구좌 향당근과 감자, 월동무가 유명하다. 부씨와 고씨, 허씨의 집성촌으로 하도리는 7개의 자연마을 창흥동, 동 동, 굴동(굴가름), 신동, 서문동, 서동, 면수동으로 구성돼 있다. 하도리는 일제강점기 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한 마을로 유명하다. 굴동포구 앞 바다에는 토끼섬(난도)과 크고 작은 여가 많아 수산물이 풍부하다. 해녀가 많고 반농반어의 경제구조로 비교적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1931년 해녀항쟁을 주도 한 해녀들도 대부분 하도리 출신이었다. 당시 야학을 통해 해녀들의 항일의식을 고취하고 조직화한 것은 하도국민학교 교사들과 이 마을 출신의 항일운동가들이 었다. 1 1) 그러나 4·3을 겪으며 하도리 출신 항일운동가들은 많은 고난을 당했다. 구좌면 인민위원장을 지냈 던 오문규는 4·3 직후 일본으로 피신해 생존할 수 있었다. 그는 그 후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먼 타국 에서 숨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