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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제주읍 부 직속 특별수사대 최난수(崔蘭洙) 경감, 제주도 서북청년회 김재능(金在能) 단 장 등을 들고 있다. 다. 현황 지금의 제주은행 본점 앞에 위치했다. 당시 건물은 헐려 그 흔적이 없다. 옛터에 들어선 현대식 2층 건물에는 PAT 옷가게가 들어서 있다. ② 오현중학교 옛터 가. 소재지 제주시 오현길 63 (이도1동 1421-29번지) 일대 나. 개요 오현중학교는 처음에는 제주제일중학원(초대 이사장 황순하) 이름으로 재단이 설립(1946. 2. 15.)되면서 제주읍 이도리 1437번지 오현단에서 개교(1946. 3. 3.)했다. 그러다가 같은 해 10월 오현초급중학교(교장 직무대행 양명률)로 이름 이 바뀌었다. 당시 6학급을 두었고, 교사로는 김종현, 김호전, 김봉현, 백우원, 문 태오, 양세민이 있었다. 오현중에서는 1947년 3월 1일, 학생들이 주축이 된 제28주기 3·1기념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북국민학교 집회를 주도했던 3·1기념투쟁위원회와는 별도의 학생조직인 3·1기념 준비위원회(1947. 2. 24., 농업학교, 제주여자중학교, 오현 중학교 학생들이 결성)가 주도한 것이었다. 이날 이곳에서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북국민학교 집회에 참석했다. 이 과정에서 큰 불상사는 없었다. 이날 행사는 관덕정에서, 제주도에서는 처음으로 인명이 살상되는 경찰 발포사 건으로 이어졌고 그 후 미군정의 무차별 탄압이 이어지며 4·3이 발발했다. 3·1사건 후, 오현중 교사였던 김봉현은 1947년 6월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일본에서 김민주와 공저로 1963년 이후 『제주도 인민들의 4·3무장투쟁사』와 『제 주도 혈의 역사』를 발간했다. 교장 서리였던 강순현은 학생선동 혐의로 검거됐다. 그는 무기징역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한국전쟁 며칠 전인 1950년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