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page
73 서귀면 귀포경찰서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됨. 그는 지난 해 8월 7일 제 주지방심리원에서 벌금 1천원 형, 같은 해 4월 14일에는 벌금 5천원 형을 선고받았었음 6월 29일: 고근수(31, 남)와 고중호(22, 남), 김근익(29, 남), 변만조(25, 남), 변인택(24, 남) 5명은 이날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같은 해 10월 2일 제주읍 용담리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됨. 2008년 제주국제공항(정뜨르비행장) 내 암매장지에서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했으나 이들 유해는 나오지 않음 (용담리 -학살터-제주비행장, 참조) 1950년 7월 28일: 강기덕(28, 남)·고춘자(26, 여) 부부와 강문택(39, 남), 고만일 (33, 남), 고승현(25, 남), 고주만(21, 남), 고찬봉(22, 남), 김상 준(22, 남), 현행주(26, 남) 9명은 한국전쟁 직후 예비검속돼 서 귀포경찰서와 절간고구마 창고에 구금됐다 7월 28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야간에 군트럭에 실려 서쪽방향으로 간 후 행방불 명됨 (용담리-학살터-제주비행장, 참조) 7월 29일: 고군율(49, 남)과 고행준(미상, 남) 2명은 예비검속됐다 7월 28 일과 29일 이틀에 걸쳐 야간에 군트럭에 실려 서쪽 방향으로 간 후 행방불명됨. 이들은 그간 총살당했거나 수장됐을 것으로 추정됐었는데 2008년 정뜨르비행장 유해발굴 후 DNA 감식으 로 신원 확인됨 현재까지 정부가 인정한 서홍리 4·3희생자는 모두 150명(남 116명, 여 34명) 이다. 1) 4·3성 - 서홍동 4·3성 서홍동 4·3성은 2차에 걸쳐 축성됐다. 1차는 모든 주민을 동원해 1948년 11월 하순부터 1949년 2월까지 진행됐다. 이때 성 밖에 위치하게 됐던 안가름(섯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