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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주었습니다. 그는 팔에 주사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아편쟁이였어요. 안 정숙 간호원이 팔에 주사하려 해도 주사바늘이 들어가지 않자 겨드랑이 밑에 꽂으라고 하더군요. 그는 재임기간 내내 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찾았습니다.” 9연대 군인이었던 윤태준도 기억했다. “연대 정보참모가 탁성록인데 그 사람 말 한 마디에 다 죽었습니다. 그때 헌병에게 잡 혀가면 살고, 탁대위에게 잡혀가면 민간인이고 군인이고 가릴 것 없이 다 죽었습니다.” 1948년 가을께 9연대는 농업학교에 주둔했다. 운동장에 마련된 임시수용소 천 막에는 무차별 검거된 유지들과 주민들이 가득 수용됐다. 이들 조사는 정보과 소 속 군인들과 사찰계 형사들이 담당했다. 당시 제주도에는 ‘농업학교 수용소에 갇 혀보지 않으면 유명인사가 될 수 없다’는 유행어가 돌 정도였다. 조사는 으레 폭 행과 고문으로 이어져 엉터리 범죄인을 양산했다. 한편, 정부 조사보고서는 당시 제주읍내 주민들의 학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송요찬 9연대장, 9연대 정보참모 탁성록(卓聖錄) 대위, 제주비상경비사령 9연대 정보과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