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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받았었음 (서귀리-학살터-정방폭포와 소남머리 일대, 참조) 12월 23일: 강오생(50, 여)·고중희(23, 여)·강OO(6, 여. 고중희의 자)·고중 옥(19, 여)·고중길(16, 여) 일가족 5명은 토벌대를 피해 인근 야 산에 숨어 지내다 이날 서홍리 생수동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12월 25일: 강인택(59, 남)과 김태준(70, 남)·김유석(60, 여) 부부, 고인화 (20, 여)·허OO(1, 남) 모자, 오정규(32, 여)·고행남(11, 남)·고 행보(9, 남)·고OO(3, 남)·고OO(4, 남) 가족, 오정희(22, 여) 등 11명은 입산자 가족이라는 명분으로 이날 향사 앞마당에서 죽 창에 찔려 죽거나, 향사 뒤쪽으로 끌려가 총살됨. 또한 이날, 토 벌대는 송태삼과 고승화, 허영화를 체포한 후 송태삼의 목을 베 허영화로 하여금 들고 내려오게 한 후, 서홍리 향사 마당에 주 민들과 도피자 가족 수용소에 있던 주민들을 집결시켜 보게 하 고 위 희생자들을 불러내 창살하거나 총살했음 (서홍리-학살터 -향사 옛터, 참조) 한편 이날, 입산해 활동하던 고승화(32, 남)는 허영화(1948년 12월 30일 희생)와 같이 체포돼 서홍리 향사마당으로 끌려옴. 토벌대는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가족들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 고 그를 서귀포경찰서로 연행함. 그는 그 후 행방불명됨 (동홍 리-학살터-무죽시, 참조) 12월 30일: 허영화(20, 남, 닷새 전 학살된 고인화의 남편)는 입산해 활동 하다 지난 12월 25일 체포돼 서홍리 향사마당으로 끌려왔었 음. 이때 그는 토벌대의 강압에 송태삼의 목을 들고 내려왔고, 향사 마당에서 처와 아들을 포함한 주민 11명이 학살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음. 그 후 그는 서귀포 경찰서로 압송됐다 이날 소 정방폭포 근처 밭에서 총살됨 12월 미상일: 허창효(18, 남)는 제주읍으로 피신했다 연행돼 농업학교 2연대 수용소에 갇힘. 그는 그 후 고문과 구타를 당하다 석방됐으나 후유증으로 다음해 10월 20일 사망함 12월 미상일: 오덕근(31, 남)은 일본에서 살다 해방 후 귀국했는데 12월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