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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식 (당시29세) 마석 모란공원 납골당에 안장 1959년 12월 15일 출생 19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입사 1987년 2월 회사의 임금동결에 항의하는 중식거부투쟁에 참여 1987년 5월 민주노조 건설을 위한 대의원선거 및 노조지부장 선거에 참여 1987년 5월 28일 회사측의 대의원 매수 공작으로 민주노조건설 방해 1987년 6월 8일 외출 후 실종 1988년 3월 2일 창원 불모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채 발견 |13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하여 ’87년 2월경 회사의 임금동결 에 항의하는 중식거부에 참여하였고, 같은 해 5월경 노조 대의원, 지부장선거에 서 민주파 대의원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주파 활동가 모임에 참석 하는 등 민주노조 건설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러한 동지의 활동은 민주노 조운동 자체가 봉쇄되고, 불온 시 되던 ’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대투쟁 이전 시기에 법적으로 보장된 노동 기본권이 극도로 제약받던 국가방위산업체에 서, 노동현장의 권위주의적 질서에 항거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 시킨 활동이었다. ’87년 5월 노조지부장 선거와 관련하여 지지후보가 달랐던 반 대파 조합원 이 모씨와의 상해사건에 연루되어 그의 고소로 경찰서 출두요구서 를 받기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6월 8일 행방불명되었다. 유족들의 진정과 항의로 당시 국회 설훈의원 등이 참여하는 대책위가 구성되 어 활동 중 ’87년 12월 14일 천주산 관음사 부근에서 1차적으로 시신이 발견되었 으나 동지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 후 ’88년 3월 2일 창원공장 인근 불모산 기슭에서 유골로 발견되었다. 당시 창원경찰서와 마산지검은 동지가 이모씨와의 폭력사건 합의가 어려워지자 구속을 두려워한 나머지 실종 당일인 ’87년 6월 8일 변사현장에서 목을 매어 비관, 자살한 것으로 수사종결하였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회사측은 창원공장의 화장실 낙서를‘사건 화’하여 5월 지부장 선거에서 어용후보의 당선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고자 하 였는데, 회사측 이해에 가까운 지부장 후보를 내세우고, 민주 지부장 후보를 지 지하던 대의원을 매수, 회유하여 선거결과를 왜곡시켰다. 폭행사건 직후 진단서 가 회사측에 보고 된 경위, 고소장이 당시 경찰서 수사과 타자기로 작성된 경위 를 보면 당시 회사노무관리자와 경찰의 조직적으로 개입하였을 것으로 판단된 다. 실종∙변사 사건을 현장 지휘한 검찰 역시도 당시 타살로 의심되는 여러 현 장 증거물에 대해서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배척하였고, 위 사건의 핵심관 련자에 대한 조사기록이 누락되었거나 조사를 기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들 정 황으로 보아 동지의 사건은 실종에서부터 변사사건 내사종결까지 국가기관의 조 직적 개입에 의해 조작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겠다. 끝내살리라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