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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어 해변 마을에 생활하던 사람들이 돌아왔다. 수망리 마을 사람들도 재건된 의귀리 마 을로 몰려들었다. 해변 마을에서 괄시를 받으면서 살기보다는 고향이 가까운 이 마을 이 좋았고 생계유지를 위해서 농사일을 하는데도 해변마을 보다는 가까운 편이기 때문 이다. 그러다가 수망리 마을도 1950년 봄에 재건되었다. 집들이 전소되어 마을을 떠난 지 1년 만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성을 쌓고 그 안에 살았으며 저녁에는 성문을 닫기 때 문에 밤이면 성문 밖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으며 낮과 밤에 보초를 섰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허락을 받아야 했다. 수망리 마을은 120호 정도 되었는 데 재건되어 돌아온 집은 60호 정도가 안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성을 쌓는데는 짚으로 만든 푸지개로 돌을 운반했다. 성은 약 5~6m 간격으로 이중담을 쌓고 그 사이에 탱자나무를 냇가에서 잘라다 놓아 누구도 그 가시 많은 탱자나무를 밟고 성안으로 넘어올 수 없도록 탄탄하게 쌓았다. 성에는 여섯 개의 초소가 있었으며 초소당 4명이 보초를 서고, 나무로 만든 패를 돌려서 연락을 했으며, 본부는 100~150m 거리에 있는 경찰 파견소이다. 초소에는 여자만 근무하는 3초소가 있었다. 초소에는 총을 소지한 주민인 경찰협조원이 있어서 초소를 관리하였다. 당시 (60가구가 입주한) 초가집은 삼각형 지붕에 외벽에 돌담을 쌓아서 대충 흙으로 구멍을 막아 냉혹한 찬바람을 막았으며 지금처럼 방과 방, 거실 구분이 없고 대충 짚으 수망리 북쪽 성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