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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9 구좌면 정부가 인정한 한동리의 4·3 희생자는 40명으로 남자 33명, 여자 7명으로 나 타난다. 1) 4·3성 <상동 4·3성> 가. 소재지 제주도 구좌읍 한동리 1836번지 일대 나. 개요 한동리 4·3성은 1949년 초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마을을 한바퀴 빙둘러 쌓아 졌다. 높이는 2.5m 정도였고, 상하동을 잇는 길이 5~6㎞의 장성이어서 주민들의 고생이 많았다. 성 밖 해자에는 가시나무를 베어다 넣었다. 일주도로와 면한 곳에 동문과 서문을 만들었고, 상동엔 남문이 있었다. 주민들이 번갈아 망루에서 보초 를 섰다. 당시 직접 성담을 쌓으러 다녔던 김자봉(1930년생, 남)은, “(1949년) 2월 달로 보면 될 거라. 마을사람은 남자고 여자고 아이고 어른이고 늙은이고 할 것 없이 백 프로 다 나완 성을 쌓기 시작헨. 몇 개월 동안이라. 성이 완성되고 나니깐 이 젠, 젊은 사람 동원헨 산에서 들어오는 골목마다 보초를 서는 거라. 낮에는 훈련 을 하고 밤에는 보초를 서고. 집에 와서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밤낮 시달렸 지. 집에 와서 10분, 20분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어. 마을을 지킬라 그러니까”라 총살되지 않고, 군 보조원으로 끌려다니다 행방불명됐다.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같은 마을 이덕준 의 권유로 부산으로 갔다가 빨갱이로 몰려 사망했다 한다. 한편, 김창보는 이날 사망하지 않았으나 유족이 이날로 신고했고, 김여운은 이날 사망했으나 아직 희생자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 때문에 1949년 5월 20일 사망자는 김봉추와 김완조, 김창보, 김여운 4명으로 봐야한다. ※ 관련자료: 『둔지오름』, 김창욱 증언(2013. 7. 4.), 고원순 증언(2013. 7. 10.,), 김정집 증언(2013.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