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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5월 10일 선거일을 전후해 며칠씩 마을을 비우며 선거를 거부했다. 그러나 한동 리에서는 별 탈 없이 선거가 치러졌다. 그 후 한동은 무장대로부터 우익마을로 지 목돼 표적이 되었다고 주민들은 주장한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 다음날인 5월 11 일, 무장대가 평대리에 소재한 구좌면사무소를 습격해 불태웠다. 이어 한동리를 기습해 방축동으로 들어오면서 고부길 이장집을 불태우고, 보초 서던 주민들을 살상했다. 이날 고귀부(39, 남) 등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 한동리는 우익 성향의 마을이었음에도 토벌대에 의한 학살사건도 많았다. 1948년 11월 11일: 임권일(19, 남)이 함덕 군부대에 끌려가 총살됨. 토벌대 첫 주 민학살사건임 12월 5일: 윤상록(59, 남) 가족 4명은 무장대 습격에 대한 보복으로 토벌 대가 무장대 가족이라며 평대리 갯머리에서 총살함 1949년 1월 8일: 구좌중앙국민학교에 주둔하던 서청 군토벌대가 고부길(34, 남, 이명 고승호) 등 마을유지 6명을 주둔지로 끌고가 밤새 고문하 다가 다음날 학교 앞 월정리 비석거리에서 총살함 (월정리-주 둔지-구좌중앙국민학교, 참조) 3월 5일: 고덕삼(26, 남)은 경찰 출신으로 민보단 부단장을 맡아 활동하 다 끌려간 후 세화국민학교 북쪽 망머루에서 토벌대에 총살됨. 이때 정시욱(37, 남)도 함께 총살됨 1949년 5월 20일: 김봉추(24, 남)와 김완조(21, 남), 김봉문(24, 남), 김창보(21, 남) 4명은 부산에 거주하다 군인들에게 연행된 뒤 거제도 장승 포에서 총살됨3 2) 이두평(19, 남)과 고귀부(39, 남)가 살해되고, 윤수복(36, 남)과 김이휴, 임창식(21, 남) 3명이 부상을 입음 3) 김봉문(金奉文, 23)은 한동리에서 야학교사로 활동하다 4·3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부산으로 피신 했다. 그 후 그는 부산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다 1949년 어느 날, 군인들의 불심검문에 걸려 고향이 제주도라는 이유로 취조를 받았다. 그는 고문 끝에 부산에 살고 있던 친구들의 이름을 말해버렸고, 곧 동아대학교 학생 김봉추(金奉秋, 23)와 그의 조카로 부산 해동(중)고등학교에 다니던 김완조(金 完祚, 20), 대중신문사에 근무하던 김창보(21, 이명 김운택), 김여운(미신고자) 등 4명이 군인들에게 연행됐다. 그 후 이들은 1949년 5월 20일, 거제도 장승포에서 총살됐다. 당시 김봉문은 친구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