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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1949년 1월 12일: 강심정(22, 여)을 비롯한 12명이 의귀국교 동녘밭에서 토벌대 에 학살됨 (의귀리-학살터-의귀국민학교 동녘밭, 아래 희생자 집단묘지-현의합장묘 4·3위령공원, 참조) 1월 14일: 김문봉(53, 남) 가족을 비롯한 수망리 주민 11명이 정동굴왓에 서 토벌대에 발각돼 표선리 한모살에서 총살됨 (표선리-학살터 -한모살(표선 백사장), 참조) 수망주민들은 마을이 초토화된 이후 인근 야산이나 궤에 은신했다 토벌대에 발 각돼 학살되는 일도 많았다. 그 대표적인 장소로 사리물궤가 있다. (아래 은신처· 학살터-사리물궤, 참조) 물영아리오름 인근에 피신했던 주민들도 큰 희생을 치렀 다. 주민 현원휴(2004년 73세, 남)가 증언했다. “우리 가족은 물영아리 인근에서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피신생활을 했다. 그런데 배가 고파서 무라도 캐먹어야겠 다는 생각에 내려오다가 어머니와 조카 등 7명이 숯굽도에서 토벌대에 걸려 죽었 다.” 그리고 김문봉·김인봉 형제도 가족과 같이 물영아리 인근에 피신했다 토벌대 에 붙잡혀 어린 아이를 포함한 두 가족 11명이 한모살(표선 백사장)에서 총살됐 다. 그 후 1949년 3월이 되자 산간에 은신하며 살아남은 수망리 주민들에게는 귀 순공작이 펼쳐지기도 했다. 수망주민들은 의귀리가 1949년 7월 성을 쌓고 마을을 재건할 때 함께 올라와 살았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은 같은 해 11월, 수망리도 마을에 축성을 시작했 다. 당시 수망리 4·3성은 남조로 사거리 남쪽으로 사각형 형태로 쌓았다. 외성과 내성이 있는 이중성이었고, 두 성 사이 5m 안에는 구덩이를 파 가시덤불을 가득 담아 놓았다. 성문은 북문과 남문 두 개를 설치했다. 지금의 경로당 부근에는 망 루도 있었다. 그 후 성안에는 경찰파견소(수망리 235-1번지)가 설치돼 경찰 3~4 명이 근무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수망리 4·3희생자는 모두 108명(남 74명, 여 3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