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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⑯ 69 했다. 그러면서 두 내 외는 비석 언저리 티 끌을 주웠다. 기산도, 살아서는 떠돌이 거지 지사로 핍박받은 삶이었건 만 돌아가신 뒤 후손 의 보살핌으로 영혼 이 편히 잠들고 있기 에 나그네의 마음이 아주 흐뭇하였다. “사 람은 관(棺) 뚜껑을 닫 고 100년이 지난 뒤에 야 제대로 평가된다” 는 말이 빈말은 아니 었다. ‘폭도(暴徒)’가 의사(義士)가 되고, 군부대신이 매국노가 된 현실을 눈앞에 보고 있지 아니한가. 기노식 씨 집은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마을의 여 느 시골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양지바른 흔한 집이 었다. 마루 벽에는 흰 두루마기에 갓을 단정히 쓴 노 인의 사진이 액자에 담겨 정면에 걸려 있었고, 그 액 자 아래에는 정부에서 내린 ‘건국공로훈장’이 낡은 액자에 담겨 벽에 걸려 있었다. - 저 어른이 기산도 의사입니까?” “그러지라오.” 기산도 의사 며느님의 대답이었다. 순간 나는 예 까지 미련스럽게 애써 끌고 온 스캐너를 요긴하게 쓸 기회를 잡았다. - 저 사진 좀 복사해 가야겠습니다. “안 돼요, 유품이라곤 저것 하나밖에 없소. 사람 들 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가져가놓고는 꿩 구워먹은 소 식이라……. 저 사진은 탐내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빌려준 적도 없소.” 기노식 씨가 정색을 했다. 그새 고영준 선생이 승 용차에서 내 노트북과 스캐너가 든 가방을 가져왔 다. 나는 이 사진을 바로 이 자리에서 복사하고는 돌 려드릴 것이라고 하니까 그제야 사진틀을 내려주었 다. 곧장 스캐너를 작동시켜 곧 스캔 작업이 끝났다. “달나라에 갔다 왔다한다는 시상(세상)이라더니 참말로 좋은 시상이구만요.” 당오리 마을 입구에 세워진 ‘의재 기산도 의사 추모비’(왼쪽)와 ‘유리언걸지사’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