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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남원면 은 주민들이 수감됐어” 하고, 증언했다. 이윤은 그 후 2중대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20일, 이곳에서 철수해 태흥리로 주둔지를 옮겼다 고 했다. 다. 현황 당시 의귀국교가 있었던 자리에는 의귀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학교 건물은 여 러 번 증개축을 해 4·3 시기 흔적은 남아 있지 않으나 현재 학교 북쪽 울타리(남 조로 375)의 돌담이 당시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쌓았던 1.2m 높이의 성담으로 잘 보존돼 있다. 라. 4·3길 안내판 의귀초등학교 의귀초등학교는 1941년 남원공립국민학교 병설 의귀간이학교로 개교하여 오 늘에 이르고 있다. 4·3사건 당시 의귀국민학교는 의귀리·수망리·한남리·신흥리 4 개 마을의 어린이들이 함께 다녔던 학구공동체였다. 학교는 4·3사건이 한창이던 1948년 12월 15일 폐교되었고 그 직후인 12월 26일부터 육군 제2연대 1대대 2 중대가 주둔하였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무장대가 의귀국민학교를 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군인 4명과 무장대 51명이 사망하였다. 이 습격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은 의귀국민학교에 수용 중이던 80여명의 주민들을 학교 동녘밭에서 학살해버렸다. 이때 희생자들은 현재 “현의합장묘”에 안장되어 있다. 학교는 4·3사건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1949년 8월 1일 남원국민학교 의귀분교장 으로 다시 문을 열었고, 4·3사건으로 인해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학생들은 2003 년에 명예졸업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