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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을도 있었다. 신천동은 당시 3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살던 작은 마을로 1949년 1 월 6일, 갓 교체된 2연대에 의해 초토화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었다. 이날 예고 없이 들이닥친 토벌대는 마을을 불지르고 주민들에게 발포했다. 그리고 주 민 20여 명을 끌고가 주정공장에 가뒀다가 1월 17일 집단학살했다. 당시 동서광양마을에는 중산간 마을인 영평과 아라, 오등, 오라리에서 소개 온 주 민들이 많이 살았다. 이들 소개민들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나중에 도피자 가족 으로 몰려 희생되는 경우가 많았다. 1952년 9월 15일에는 KBS제주방송국이 무장 대의 습격을 받아 직원 김두규와 채종식, 김석규가 희생되기도 했다. 이들 추모비 는 원래 연동 KBS제주방송국에 서 있다가 지금은 KBS가 도남동으로 이전하면서 비석도 옮겨 세워졌다. (도남리-비석-KBS제주 9·15순직방송인 추모비 참조) 이도리 주민들 학살은 화북리 고우니모루와 외도동 도그내, 용담동 도령마루, 동광양 물통에서 이루어진 경우가 많았다. 1948년 6월 미상일: 박금순(15, 여)은 무장대에 식량배달 혐의로 자택을 급습한 토 벌대에 연행된 뒤 행방불명됨 11월 6일: 이한구(20, 남, 이명 이승탁, 제주우체국 통신과)는 숙직 후 퇴 근 중 토벌대에 붙잡혀 아라리 박성내에서 총살됨 12월 21일: 한중옥(39, 남, 운수회사 경영)은 형의 집에서 식사 중 토벌대 에게 연행된 뒤 건입리 고우니모루에서 총살됨 12월 24일: 조대수(42, 남, 제주석유조합)는 전날 헌병대에 연행된 뒤 고 문·폭행을 당하다 이호해수욕장 부근에서 학살됨 12월 29일: 문상준(27, 남, 제주도청 농무과)은 9연대 군인들에게 농업학 교로 두 차례 끌려갔다 현 제주시청 부근에서 공개 총살됨 1949년 1월 10일: 장병생(22, 남, 제주버스회사 운전기사)은 지난해 12월말 제주 경찰서로 연행됐다가 이날 고우니모루에서 총살됨 1월 15일: 김영봉(23, 남)은 제주농업학교 재학 당시 좌익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토벌대에 연행된 뒤 외도리 옴팡밧에서 총살됨 1월 18일: 김치택(26, 남) 등 5명은 토벌대에 연행된 뒤 도령마루에서 집 단학살됨. 시신 수습 당시 50여 구의 시신을 보았다는 증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