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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시키고 그곳을 중심으로 축성해 1949년 2월에 완성됐다. 1차 축성이 완료되고 한 달 후인 1949년 3월, 2차 축성이 시작됐다. 이때에는 1차 축성 당시 제외되었 던 섯동네를 두르는 공사였다. 2차 축성 후 1차 축성 당시 소개됐던 섯동네 주민 들은 자기 마을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멀왓과 솔대왓, 눌왓동산 주민들 은 자신들의 살던 마을이 여전히 성 밖이어서 소개지에서 살아야 했다. 주어동은 별도로 성을 쌓았다. 4·3 후 서홍의 모든 마을은 제자리로 돌아갔으나 산쪽에 가 깝고 가호가 적었던 눌왓동산은 지금도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다음은 마을 주민들의 주요 학살사건이다. 1948년 5월 25일: 강남석(43, 남)을 비롯한 고찬경(29, 남)·고찬하(23, 남) 형제, 고평호(49, 남), 변시진(37, 남) 5명은 우익인사들로 5·10선거 에 적극 참여했음. 이들은 이날 새벽, 무장대의 죽창에 찔려 살 해됐는데 현재 서귀북초등학교 울타리에 마을주민들이 ‘故同志 合同記念碑’를 세워 이들을 기리고 있음. 한편, 고찬순(21, 남) 은 고평호의 아들로 그도 이날 자택을 기습한 무장대를 피해 숨 었다 행방불명됨 (서홍리-비석-고 동지 합동기념비, 참조) 5월 26일: 변기원(66, 남)은 마을 구장으로 이날 밤 무장대에 지목돼 살해 됨. 둘째 아들 변시윤은 대청 서홍리 단장을 맡아 일하다 경찰 에 투신한 후 1950년 9월 15일, 무장대와 교전 중 사망함 7월 30일: 김성준(27, 남)은 지난 4월 제주지방심리원에서 포고령19호 위 반으로 벌금 5천원형을 언도받음. 그는 7월에는 살인강도방조 혐의로 3년형을 언도받아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 행방불명됨 7월 미상일: 고관식(27, 남)과 김성용(25, 남)은 지난 5월 25일 우익인사 살 해사건 연루 혐의로 경찰에 연행됨. 그 후 이들은 7월께 다른 지방 형무소로 이송됐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행방불명됨 8월 22일: 오유만(33, 남)은 민보단원(향보단원)으로 이날 중동에서 보초 서다 무장대에 학살됨. 그의 이름은 주민들이 서홍국민학교 운 동장에 세운 ‘故同志合同記念碑’에 새겨져 있음 11월 6일: 강신평(48, 남)·강영문(24, 남) 부자와 강형표(59, 남)·고정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