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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5년 4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달렸다. 핸들을 잡은 고영준 선생은 고흥반도에 접 어들자 무료했음인지 기산도 의사 얘기들을 주섬주 섬 늘어놓았다. 그런데 기산도 의사보다 당신 핏줄 인 대고모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대고모가 영감님(기산도) 양기(陽氣)를 도무지 받 을 수 없어 후손도 없이 친정살이를 하다가 친정에 서 돌아가셔서 친정 선산발치에다 묻어드렸다는 아 픈 얘기를 전했다. 대고모는 아버지(녹천)의 명으로 기산도 의사와 혼인을 하였지만 신랑이 집안은 조금 도 돌보지 않고, 역적들 응징하는 일에 골몰하다가 경찰서 유치장과 감옥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모진 고문에 반신불수로 몸이 망가지고, 천성이 역마살인 지 떠돌이로 평생을 살았으니, 남편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 대고모는 친정도, 시집도 일제 에게 모두 대가 끊기는 화를 입었으니 예사 박복한 인생인가. 녹천 의병장도 양자로 대를 이었고, 기산도 의사 도 동생의 큰아들을 양자로 들였는데, 후사(後嗣; 대 를 잇는 아들)가 없어 다시 둘째인 기노식 씨를 양자 로 맞았다고 기산도 의사 집안 내력을 들려주었다. 떠돌이 거지 지사가 잠든 곳을 찾다 지도에서 보면 고흥반도가 마치 겨울날 처마의 고 드름 같기도 하고, 고구마 같기도 한데 실제로 달려 보니 여간 먼 길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곳 길은 시원 스럽게 잘 닦아져 있었다. 한하운 시인의 시구처럼 ‘가도 가도 끝없는 전라도 길’이 이어졌다. 경상도 출 신인 나에게 고흥반도는 난생 첫 길이었다. 도로 표 지판에 나라도 우주센터가 보였다. 이 궁벽한 고흥 반도에 우주개발센터가 들어선다니, 이제 이 지역은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된, 우리나라 최첨단 섬으로 거 듭 난 셈이다. 마침내 우리가 찾는 고흥군 도화면에 이르렀다. 승 용차를 도화신협 앞에 세운 뒤 고영준 선생이 손 전 화 버튼을 누르자 곧 기산도 의사 아들 내외인 기노 식(81) 씨와 정복덕(76) 씨가 허겁지겁 달려 오셨다. 우선 기산도 의사 추모비부터 들르자고 했다. 거 기서 엎어지면 무릎 닿을 곳에 추모비가 서 있었다. 추모비 앞에는 기산도 의사의 유언 “유리언걸지사 기산도지묘(流離焉乞之士 奇山度之墓, 떠돌이 거지 지사 기산도의 묘)”라는 글씨가 유언이었던 나무 비 가 아닌 돌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저 비를 세웠으니 아주 맴이 편안해요.” 기노식 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을 찾는다고 기산도 의사의 유일한 유품인 얼굴 사진 (기노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