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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구좌면 4) 역사현장 <김녕국민학교> 가. 소재지 제주시 구좌읍 김녕로 117 (김녕리 1656번지) 나. 개요 김녕국교는 1923년 구좌보통학교로 개교한 도내에서는 손꼽히는 유소년 교육 기관이었다. 4·3 시기 김녕국민학교는 일제 말기 개칭된 김녕공립국민학교 이름 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곳에는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이 한창이던 1948년 10월 말 이후, 9연대의 서 청특별중대 2 일부 병력이 주둔했었다는 증언이 있다. 12월 중하순, 서청특별중대 는 이곳 김녕국민학교 운동장에 소개민인 덕천 주민들을 모두 집결시키고 젊은 청년들을 골라냈다. 그리고 이들을 무장대 내통자로 몰아 고문취조하다 김녕지서 에 인계했고, 김녕지서 경찰은 이들을 12월 25일 지금의 김녕농협 앞밭에서 총 살했다. 그 후 1949년 3월 4일, 서청 군토벌대는 학교 등사판이 불순한 의도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며 김녕국민학교 교사였던 강중빈(26)과 이응우(25)를 끌고 가 모진 고문을 가하다 학교 인근 밭에서 공개리에 총살하기도 했다. 3) 9연대 주둔 시기 2대대 본부는 함덕에 있었다. 9연대장 송요찬이 편성한 서청특별중대는 그 일부 병력이 김녕리와 월정리에 주둔하며 이들 마을은 물론 그 인근 행원 주민과 중산간 마을 초토화 이 후 해안마을로 소개온 피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학살했다. 1948년 12월 29일, 9연대가 2 연대로 교체된 이후에는 함덕에 2연대의 3대대가 주둔하게 되었는데, 이 3대대는 서북대대로 지칭 될 정도로 서청 병력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9연대 소속의 서청특별중대는 새로이 2연대 3대대 11중대로 편제되며 거의 같은 병력이 같 은 지역에 주둔해 같은 임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9연대의 서청특별중대 구성원이 민간 인과 군인들이 혼재돼 있었던 반면 2연대로 개편된 이후에는 특별중대 명칭을 빼고 11중대로 부르 며, 구성원도 군인 신분인 자들로만 편성됐던 것이 특징이다. (양봉철, 「제주4·3과 서북대대」, 『4·3 과 역사』 통권 8호, 2008, 53~100쪽. 그외 양봉철의 여러 논문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