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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항변 한번 못 해 보고 숱하게 학살됐다. 특히 김녕으로 소개온 동복과 덕천 주민 들이 큰 곤욕을 치렸다. 동복 출신 한 할머니는 다섯 살짜리 손녀의 손을 잡고 끌 려가며, “창으로 찌르지 말고 총으로 쏴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한다. 2 한편 김녕지서는 1948년 4월 3일, 무장대에 습격당해 경찰 2명이 부상을 당했 다. 그해 8월 31일에도 무장대의 공격을 받아 1시간 이상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사망자는 없었다. 당시 이곳에는 지서장인 한 아무개와 애월 출신 백 경사, 서청 출신 김용걸 등이 근무하고 있었다. 1948년 10월 이후, 이곳에는 서청 경찰 20여 명이 근무했다. 당시 이들은 인근 주민들을 무차별 고문하고 학살하는 악행을 수시로 저질렀다. 이들은 꽤 규모가 있는 상점을 운영하고 있던 원정옥(29)을 무장대에 물자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연 행해 지서에 가두었다. 그리고 석방을 빌미로 금전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가 거절 하자 총살해버렸다. 이들 서청 경찰 중, 저승사자로 악명을 날렸던 김용걸은 말을 타고 다니며 회초리를 마구 휘둘렀다. 그러다 그는 어떤 일로 파직됐는데 얼 마 없어 경찰에 복귀했다. 그는 그 후 다시 함덕지서에서 고문치사 사건을 일으켜 재차 파면됐다. 반면 제주 출신 한모 주임은 주민의 억울한 희생을 줄 이려 애를 썼다고 주민들은 증언한다. 다. 현황 당시 김녕지서는 지금의 김녕치안센 터 북쪽에 기와집 형태로 자리해 있었 다. 지서터에는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 다. 김녕지서 옛터 2)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5권, 1998,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