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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7 남원면 확장 후에 학교 운동장 쪽으로 이전하였다. 이발소, 대장간, 우물 등도 성안에 있었다. 규모는 밧성(바깥 성)의 경우 굽 1m 50cm, 겹담(접담) 윗도리 40cm, 높이 4m 정도 였으며, 남쪽 담장의 동서 길이 250m, 북쪽 담장의 동서 길이 300m, 동쪽 담장의 남북 길이 280m, 서쪽 담장의 남북 길이 300m정도였다. 안성(안쪽 성)은 굽 1m 20cm, 접 담 윗도리 35cm, 남쪽 담장의 동서 길이 245m, 북쪽 담장의 동서 길이 295m, 동쪽 담 장의 남북 길이 275m, 서쪽 담장의 남북길이 295m 정도였다. 밧성과 안성 사이에는 탱자나무와 가시덤불을 채워 무장대들이 성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당시 성의 흔적 은 거의 사라졌으나, 김달종의 집 울타리와 양인필의 과수원에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처음에는 수망리와 한남리 주민들도 의귀리에 성을 쌓고 살았다. 대개 한남리 주민 들은 성안에 동쪽에, 수망리 주민들은 남쪽에 거주지를 형성했다.(현재현 증언). 의귀 성안에 살았던 주민의 분포를 보면, 의귀리 162호, 수망리 32호, 한남리 26호, 신흥리 3호, 기타 3호 등 총 226호 정도였다. 수망리 재건성은 1951년 1월에, 한남리 재건성 은 1953년 3월에 축성을 시작하였다. 2~3개월 동안의 축성작업이 끝나자 수망리와 한 남리 주민들은 고향마을로 돌아갔다.” 의귀리 남문 부근에 남아 있는 4·3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