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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나서 수용 중이던 주민 수십 명을 총살했다. 당시 유족들은 군인들이 수습을 막아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흘렀고, 그 후 수습된 시 신들은 신원확인이 어려워 세 구덩이에 함께 안장해 현의합장묘를 조성했다. (수 망리-추모공간-현의합장묘 4·3위령공원, 참조) 또한 1월 12일 습격에서 사살된 무장대의 유해는 별도의 집단매장지가 만들어져 관리되고 있다. (아래 희생자 집 단묘지-송령이골(송넹잇골), 참조) 의귀주민들은 1949년 7월, 축성작업을 끝내고 하나 둘 고향 마을로 돌아와 새 삶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성 밖에 위치하게 된 동산가름과 웃물통, 민 오름 뒤편의 화전마을로 3~4가호의 주민이 살았던 장구못은 복구의 손길이 미치 지 못해 지금도 잃어버린 마을로 남아 있다. 정부가 인정한 의귀리 4·3희생자는 모두 252명(남 186명, 여 66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① 웃물통 가.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태수로 465-9 (의귀리 638번지) 일대 나. 개요 양아홍을 비롯한 15가호의 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이다. 1948년 11월 7일, 예고 없이 들이닥친 군토벌대에 초토화된 후 지금껏 복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잃어 버린 마을이 되었다. 다. 현황 현재 이곳은 모두 감귤과수원으로 변해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