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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데 구좌면 관내의 많은 주민들은 이들에게 이유 없이 검거돼 고문을 받고 김녕 이 곳저곳에서 학살됐다. 김녕이 이렇게 구좌면 서북부 지역 토벌의 중심지가 되면서 무장대의 기습도 잦아졌다. 김녕리에는 1948년 11월 17일 이후 중산간 마을들이 초토화되자 덕 천과 송당의 소개민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피난민들이 증가하자 주민들의 생활환 경은 더욱 악화됐다. 소개민들은 먹고 잘 곳이 없어 힘든 가운데 걸핏하면 폭도 협조자나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막대한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김녕리에 경찰과 군인이 주둔하게 되면서 남자들은 2개 중대의 민보단을 조직 해 토벌대에 협조해야 했다. 그중 날쌔고 젊은 청년 30명에게는 다른 임무가 주 어졌다. 이들은 별도로 특공대를 조직해 군경의 토벌작전에 참여했다. 김녕리에 서 주민들의 증언을 듣다보면 서북청년회에 대한 원성과 여성들의 수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김녕리의 주요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8월 30일: 부양은(66, 남)은 마을유지로 무장대가 백지날인을 받으러 오 자 이를 알리려 김녕지서로 가다 무장대에 살해됨 9월 25일: 김녕지서 자위대 부대장 박귀생(42, 남, 이명 박인주)이 동네 할머니의 장지에 갔다 무장대의 칼에 찔려 사망함 11월 6일: 김녕지서에 근무하는 한 서청경찰은, 원정옥(29, 남)이 금전요 구를 거절하자 총살함. 보름 후, 그의 아내 임복순(26, 여)도 서 청의 요구를 거절하자 다리에 총을 쏘아 부상을 입히고 상점의 물건들을 모두 가져가 버림 12월 25일: 김녕리로 소개해 생활하던 강창수(18, 남) 등 덕천리 청년 16 명이 사건 이틀 전인 12월 23일 서청 군토벌대에 끌려갔다 이 날 김녕농협 앞밭에서 학살됨 1949년 3월 4일: 김녕국민학교 교사였던 강중빈(26, 남)과 이응우(25, 남), 김녕 중학교 교사였던 김기추(25, 남, 평대리)와 김대연(26, 남, 평대 리)이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서청 군토벌대에게 국민학 교 남쪽 밭에서 총살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