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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서귀면 서홍주민들은 1948년 11월 하순부터 마을 자체 방위를 위해 축성을 시작했다. 다른 지역 마을들보다는 이른 것으로 이 시기 호근리와 서호리가 비슷한 시기에 축성이 시작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서홍리와 동홍리는 따로 성을 쌓았다. 축성에는 주민 모두가 동원됐다. 1차 축성은 전 주민을 중동과 동동네로 소개 9월 하순: 야산에서 활동하던 무장대가 귀순해 수용소에 있다가 다른 곳으로 이송됐는데 그 후 생사불명인 자가 7명임 1950년 6월 25일 이후: 타지방 각처 형무소에서 복역 중 한국전쟁 발발 후 생 사불명된 주민이 8명(인천형무소 4명, 마포형무소 남녀 각 1명, 대구형무소 2명)임 7월 27일: 2차 예비검속으로 집에 있다 경찰에 연행된 후 생사불명된 주민이 12명임 위의 사실 중 1948년 11월부터 1949년 5월까지 발생한 사건을 종합하면 다음 과 같다. 1) 야산지대에 피신 중이던 주민(대개가 도피자 가족들이었음) 18명이 토벌대 에 학살됨. 이들은 서귀포 피습 이후 도피 중 여러 차례 토벌대에 의해 학살 되었음. 피학살자 중 부녀자는 13명임 2) 서홍마을 출신으로 무장대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토벌대에 피살된 사람은 23 명, 생포 연행돼 사살된 사람은 2명임 3) 이 기간 내에 마을 안에 있다가 여러 가지 사유로 연행되어간 후 피살된 자 는 17명임 3. 기타사항 피해자 가호수: 70호, 3인 이상 피해자가 있는 가호 14호 구분별: 무장대에 의한 희생 8명, 군경에 의한 희생 132명 귀순 석방자: 7명(남 6명,여 1명, 현재 생존자 남 5명) 경찰 희생: 5명(토벌 작전 중 순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