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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념하여 4252년 3.1운동이 전개되자 동지백여명을 규합 동년 4월 8일 교장대 영봉에 태극기를 꽃고 독립만세를 부른뒤 천지신명에게 조국광복을 신원하고 익일 용화에 전성희 정양수와 함께 주민을 동원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 시위를 하다가 왜적에게 체포되어 대구감옥에 왜인 간수가 공을 조롱하여 너희들의 충성 충자는 벌레 충자다 하자 공이 격분하여 간수를 향해 이 벌레만도 못한 너희놈들을 죽이겠다고 꾸짖어 간수장의 사과를 받아냈다. 기후 서울로 이감되어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고 청천면 무릉에 이거하셔으나 계속되는 왜적의 감시와 위협에 굴복치않고 후배에게 애국심을 함양시키고자 훈총사숙을 설치 후학양성에 전념하시다가 염원하던 조국은 광복하였으나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못보시고 한을 품은채 4292년 2월 2일 70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 슬하에 子를 두니 세재요 세제의 자는 종달 종발 종걸이다. 432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니 하늘의 무심치않음이리라 공의애국충절의 정시능 흠모계승하는 뜻으로 지역인과 명륜회가 이 비를 세우노니 공의 충혼은 이땅에 영원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