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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블라디보스톡 한인촌 여장부 “이인순” 67 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고대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정 착했던 흔적을 남긴 일본 가나가와현 오이소 지방에 서 만난 고마쵸(高麗町) 문패를 보는 듯 가슴이 뭉클 했다. 문패가 없다고 해서 역사가 사라진 것은 아니 지만 ‘서울거리’라는 작은 문패 하나가 주는 그 정겨 움은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만난 듯 뭉클한 감동 그 자체였다. 너무 안타까운 이인순 지사의 삶 이인순(李仁橓, 1893~1919.11) 지사는 동생 이의 순 (1895~1945.5.8) 지사와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 든 자매로 이들은 정부로부터 1995년에 건국훈장 애 국장과 애족장을 나란히 추서 받았다. 이인순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 생(1873.6.20~1935.1.31)의 맏딸로 1902년 아버지 가 고향인 함경남도 단천에서 경기도 강화의 진위대 장으로 활동하게 되자 할아버지 이발(李發), 동생 의 순 등과 함께 서울로 이사와 자랐다. 이인순 지사의 아버지 이동휘 선생은 함경남도 단 천 출신으로 1907년 강화도에서 의병 투쟁을 주도 했으며, 1908년 서북학회(西北學會)를 창립하고 비 밀결사 조직인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여 계몽운동 과 항일투쟁을 전개하던 중 105인 사건으로 함경도 에서 잡혀 3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그 뒤 1912년 북 간도로 망명한 이후 광성학교(光成學校)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했으며, 1913년부터는 러시아 블라 디보스톡의 신한촌을 중심으로 조직된 권업회(勸業 會)에 참가하여 이상설 · 이갑 · 신채호 · 정재관 등과 함 께 민족해방투쟁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다. 이동휘 선생은 1935년 1월 31일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에서 62세로 숨질 때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 국민대표회 집행위원 등을 맡으며 중국 상해(上海) 와 러시아 연해주를 주 무대로 독립운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폈다. 한편 이인순 지사는 한성연동정신학교(漢城連洞貞 信學校, 현재 정신여중·고의 전신)를 졸업한 뒤 17살 이곳이 신한촌이었음을 알려주는 ‘서울거리(서울스카야2A) 문패’ 과거 신한촌 거리가 7킬로미터에 이르렀다고 하니 어디를 가도 한인 들이 살던 곳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는 십여 동의 아파트들 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