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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 남원면 불문에 부친다. 누가 어떻다는 말도 내개 하지 말라’고 선언하여 주민들이 한 시 름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이 경찰에 핍박받기는 장소장 부임 이 전과 매 한가지였다. 최근 발간된 『기억의 책』 2 에는 신흥주민들이 당시 파견소의 경찰에게 음식과 땔감을 갖다 바치느라 땀 뺐던 증언이 소개돼 있다. “4·3이 끝났다고 하는데 신흥리에는 경찰관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잘 기억나 지 않는다. 우리 마을은 1, 2반으로 조를 편성하여 경찰관들에게 밥을 해줬다. 동네 사 람들이 돌아가면서 당번을 하는데 어머니가 못 갔으면 내가 대신 가서 일손을 도왔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땔감을 만들어 열 다발씩 경찰 초소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갖다 바쳤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자기 집 일도 바쁜데 경찰들까지 먹여 살리려니 여기 저기서 불만들이 많았다. 게다가 얼마 전 우리 이웃이나 친족을 죽인 경찰들에게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강제적으로 시키 면 시키는대로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밥은 쌀밥 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배식했다. 식 대는 따로 반장이 받아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하는데 제대로 된 값이었는 신흥리 경찰파견소 옛터 2) 현춘조, 『견뎌오니 삶이 되었다. 기억의 책 제주4370』,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회, 2018, 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