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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이다. 보통 북촌대학살하면 섣달 열아흐렛날(양력 1949. 1. 17.) 북촌국민학교에 집 결한 300여 명의 주민들이 학교 인근에서 한꺼번에 학살된 사건으로 많이 알려 졌고, 4·3의 대표적인 학살사건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보다 한 달 앞서 같은 마을에서 20여 명이 집단학살된 사건이 있었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당시 마을에 남아 있던 남자들은 대부분 민보단에 편입돼 있었다. 그러나 젊은 이들 대부분은 응원대와 군경토벌대의 무차별 횡포를 피해 인근 야산으로 이미 도피한 상태였다. 매일같이 마을을 드나들며 청년들을 찾던 토벌대는, “자수하면 살려준다! 무장대에 협조를 했건 안 했건 관계없이 군부대에 자수하기만 하면 양 민으로 살게 해주겠다” 하고 주민들을 달랬다. 이말을 믿고 마을 인근에 가슴 졸 이며 숨어살던 사람과 민보단에 편입돼 토벌대에 협조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1948년 12월 16일(음 11. 16.) 아침, 이들 40여 명은 함덕국민학교 대대 본부로 갔다. 그러나 군토벌대는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주민들에게 무 장대에 협조한 사실을 털어놓으라며 고문을 시작했다. 토벌대는 협조했다는 사람 이 나타나지 않자 이번에는 5·10선거 당시 선거를 거부하기 위해 산으로 피신했 다는 자백이라도 하라고 했다. 사실 5·10선거 당시, 북촌 주민들은 제주도의 대 난시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