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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구좌면 밧 인근의 굴왓으로 끌고가 18세 이상의 남자들을 따로 분류했다. 이들은 그날 학살 대상이었다. 이때 현장은 김녕 민보단원들이 에워싸며 경계했고, 군토벌대 가 밭둑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이어 대검으로 목숨이 붙 어있는 사람들을 골라 재학살했다. 그런 후 군인들은 동네를 돌아다니며 가옥을 불태우고 집안에 있던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날 그 지옥같은 현장에서도 고계봉과 고태우, 이운태, 신일보 네 사람은 극적 으로 살아났다. 이들은 사건 후 마을로 돌아와 굴왓 학살의 진실을 증언했다. 이 날 장복밧에서 박임종(44, 남) 등 4명이 먼저 학살됐고, 굴왓에서 모두 51명이 운 명을 달리했다. 당시 굴왓 희생자 중 동복리 출신은 강봉관(68, 남) 등 46명이고, 그외 상도리와 행원리, 대흘리, 선흘리, 북촌리에서 각각 1명씩의 희생자가 추가 됐다. 그리고 마을에서 학살된 사람은 김봉옥(20, 여) 등 7명이다. 다. 현황 학살터였던 굴왓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농지로 이용되고 있다. 집결지였 던 장복밧은 동복리를 가로지르는 일주도로 변의 ‘바람타는 폭낭’ 바로 서쪽 지점 에 해당된다. 지금은 이곳에 건물이 들어서 있다. 굴왓은 장복밧과 팽나무 사이 시멘트 길로 200m 가면 나오는 우회도로의 건너편 밭이다. ② 난시빌레 가. 소재지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나. 개요 난시빌레는 난시(냉이)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1948년 12월 16일 북촌주민 21명이 이곳에 끌려와 군토벌대에 총살됐다. 1948년 12월은 토벌대의 만행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9연대와 2연대가 교체 되는 12월 29일을 전후해 서로 전과를 올리기 위한 한탕주의 학살이 무수히 자 행됐다. 이날 9연대가 북촌 주민 21명을 한꺼번에 총살한 난시빌레 학살사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