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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제주4·3유적 Ⅱ_ 서귀포시편 1. 피해 상황 인명 피해: 사망자 140명(남 106명, 여 30명, 유아 4명) 가옥 피해: 초가 12동 소실 2. 피해 사건별 1948년 5월 26일: 무장대의 마을 피습으로 사망 6명, 부상 1명이 발생함 7월 하순: 5월 26일 마을 피습에 관련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광주형무소 로 보내진 주민 중 한국전쟁 발발로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8월 22일: 향보단 야간근무 중 마을 밖에서 의심쩍은 움직임을 발견하고 경찰 서에 비상연락을 하던 중 피습받아 사망 1명, 부상 2명 당함. 이때의 피습은 무장 대에 의한 것인지 군인에 의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음 11월 6일: 군토벌대의 작전으로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산에 가깝다는 이유로 피해를 봄. 사망 10명, 부상 1명, 초가 손실 12동 발생 11월 11일: 11월 7일 서귀포 시내가 무장대의 피습을 받은 후 토벌대는 삼매 봉의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시야를 가린다며 주민들을 동원해 벌목하던 중 2명을 연행하였다가 소남머리에서 총살함 11월 12일: 경찰토벌대가 서귀포 피습 용의자를 색출하다 마을에 있던 중년 이 상의 주민 14명을 연행해 서귀포 서신교 동쪽 길 옆밭에서 학살함. 이 사건의 생 존자도 2명 있음 11월 16일: 경찰토벌대가 야산에서 토벌작전을 수행한 후 마을에 들러 ‘도피자 가족’을 향사에서 학살함(피살자 중에는 유아도 1명 있었음) 12월 25일: 경찰토벌대가 토벌갔다 돌아오다 마을에 들러 ‘도피자 가족’ 6명을 향사에서 학살함(유아 3명 포함) 1949년 1월 15일: 경찰토벌대와 같이 마을 북쪽 고븐장오름에서 토벌작전을 벌이던 한청단장이 전사함 1) 『서홍로(西洪路)』 1996, 73~76쪽. 이 내용은 2000년 4·3특별법 제정 후 유족들의 희생자 신고서와 4·3평화재단과 4·3연구소의 조사와는 차이가 있으나 마을 자체의 노력으로 작성된 보고서여서 참 고사항으로 여기에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