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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날이었다. 함덕 주둔 2연대 3대대(서북대대라 불렸음) 군인들은 북촌 학살 후 동 복리로 들어와 보초를 잘못섰다며 박임종(44, 남) 등 4명을 먼저 총살했다. 그리 고 나머지 주민들을 굴왓으로 끌고가 강봉관(66, 남) 등 51명의 청·장년 남자들을 집단학살했다. 이날 토벌대의 만행은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 후 토벌대는 마을을 불태우고 김봉옥(20, 여) 등 집안에 있던 주민 7명을 다시 총살했다. 살아남은 동복리 주민들의 김녕 소개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희생 또 한 적지 않았다. 굴왓 학살 삼일 후인 1월 20일, 토벌대는 동복 주민 10여 명을 도피자 가족으로 몰아 집단학살했다. (김녕리-학살터-김녕 공회당 앞밭, 참조) 주 민들은 만 1년의 김녕 소개생활을 끝내고 1950년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민 들은 성을 쌓고, 소나무로 오막살이를 지어 마을을 재건해나갔다. 동복리의 주요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5월 19일: 김녕중학교 학생 양희헌(18, 남)이 김녕 궤살미오름 인근에서 토벌대에 학살됨. 동복리 첫 희생자임 12월 22일: 토벌대가 김두일(41, 여) 등 8명을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동복 리 비석거리 등지에서 총살함 (아래 학살터-비석거리 옛터, 참조) 12월 24일: 민보단장 김종해(23, 남)와 동생 김찬해(16, 남, 후유증 사망)가 비석거리에서 무장대의 습격을 받아 김종해가 사망하고 김찬 해는 부상당함 12월 25일: 토벌대가 신운갑(72, 남), 김순길(65, 여)·양태룡(31 남) 모자를 도피자 가족이라며 총살함. 전날 신운갑의 아들 신영우(51, 남) 는 자살함 1949년 1월 17일: 토벌대가 동복 주민을 장복밭에 모이게 하여 보초를 잘못섰다 는 이유로 박임종(44, 남) 등 4명을 총살한 후 나머지 주민들을 굴왓으로 끌고가 강봉관(66, 남) 등 51명을 집단학살함. 그 후 다시 마을을 불태우며 김봉옥(20, 여) 등 7명을 총살함 (동복리 -학살터-굴왓, 참조) 1월 20일 전후: 토벌대는 동복 마을을 불태운 후 김녕공회당에 수용돼 있던 동 복 주민들 중 도피자 가족 혐의로 김두진(49, 여) 등 16명을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