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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구좌면 2. 동복리 동복리는 북촌리와 이웃해 있는 해안마을로, 동상동, 서상동, 동하동, 서하동의 네 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다. 원래 골막이라 불리었다. 김석익의 『탐라기년』은 그 유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어느 시기에 한 노인이 이곳에 오막살이 한 채 를 지어 살아 사람들은 곤막(邊幕)이라 지칭했다. 그러다 그 발음이 변해 골막이 라 하게 됐고, 그 후 한자표기가 필요해짐에 따라 ‘동쪽의 복받은 마을’이란 뜻으 로 동복리(東福里)라 했다. 동복리에서 9연대가 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것은 1948년 12월 22일이었 다. 이날 군토벌대는 동복리 비석거리에서 양완모(58, 여)와 안행선(57, 여) 등 8 명을 가족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총살했다. 그런 이틀 후, 이번에는 무장대가 마을 을 습격해 민보단장 김종해(23, 남)와 그 가족을 살해했다. 주민들은 혼란에 빠졌 다. 마을의 청·장년들은 온몸으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서둘러 인근 숲이나 궤에 숨어들었고, 일부는 더 깊은 산 속으로 피신했다. 토벌 주력부대가 9연대에서 2연대로 교체된 12월 29일 이후 주민들에 대한 학 살극은 극에 달했다. 1949년 1월 5일, 함정토벌에 걸려든 강봉욱(49, 남)·백봉월 (42, 여) 부부가 군인들에게 학살된 것을 시작으로 동복리에서 가장 큰 집단학살 사건이 1949년 1월 17일 벌어졌다. 이날은 이웃 북촌마을에서 대학살이 벌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