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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남원면 4. 신흥리 신흥리는 조선 말기에는 서중면 온천리로 불렸다. 신흥리라는 지명은 일제강점 기인 1914년 일제가 주변 일부 마을을 통폐합해 신흥리를 조성하면서 생겨나 지 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흥리는 남원면 동쪽 끝 마을로 송천을 경계로 동쪽은 표 선면 토산리와 접해 있고, 서쪽은 태흥리·의귀리와 이웃해 있다. 신흥리는 1961년 8월, 보말동과 방구동 지역을 신흥 1리로, 온천동과 고수동, 석수동을 신흥 2리로 행정구역을 변경했다. 신흥리는 현재 일주도로변 해안마을인 신흥 1리와 중산간 마을인 신흥 2리로 구분돼 있다. 그러나 4·3 시기에는 1, 2리 구분 없이 해안 지역에 방구동과 보말 개, 넙지리굴이 자리했고, 중산간 지역에 여우내(온천동)와 고수동, 석수동, 선돌 선밧, 물도왓, 던덕모루 같은 크고 작은 마을이 있었다. 당시 신흥리는 주변 중산 간 마을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다 4·3을 거치면서 마을 중심이 중산간 마을에 서 해안마을로 바뀌었는데 토벌대가 1948년 12월 중산간 마을에 소개령을 내려 마을을 초토화했기 때문이다. 신흥리의 4·3은 김성홍 몰라구장의 일화로 시작된다. 왜 김성홍 구장이 유명한 지 제주4·3평화기념관은 <의로운 사람들> 코너에서 김구장을 이렇게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