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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 구좌면 명령해. 세화국민학교 운동장에 집결하라. 그러면 각 마을에서 알아서 모였지. 거 기서 의심되는 사람은 군인들이 호명해서 끌고가다 저기 연두망에서 종종 죽여버 리기도 했지” 하고 증언했다. 한편 1947년 6월 6일 발생한 종달리 6·6사건도 세화지서 경찰들이 종달리를 순찰하던 중 마을청년들에게 구타당하며 발생했다. 다. 현황 당시 지서가 있었던 자리에는 구좌파출소가 현대식 건물로 단장해 자리하고 있 다. 파출소 울타리에는 4·3정립연구·유족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있다. 세화지서 추모 표지석 이곳 세화리 1452-3번지는 4·3 당시 제1구(제주)경찰서 세화지서 옛터이다. 1948년 4월 3일 오전 2시 무장폭도 40여명이 세화지서를 습격했다. 당시 지서 내에는 10명의 경찰관이 근무, 기습에 대응했으나 중과부적으로 일시 폭도에게 점거됐고 카빈총 등 총기 2정과 실탄 14발을 빼앗겼다. 또 경찰관 2명이 폭도의 일본도에 부상을 입었다. 1948년 12월 3일 밤 9시경 이덕구 폭도사령관이 지휘 하는 무장폭도 110여 명이 우익마을 세화리를 대대적으로 공격했다. 다음날 새 벽 2시경 철수할 때까지 주민 50여 명을 집단학살하고 세화초교, 향사와 40가호 150채를 불태웠다. 지서에는 본서 직원 15명과 응원경찰 20명 등 35명이 지서 를 사수하였다. 1950년 12월 27일 지서 관할 동복리에서 장인빈 순경(경위 추 서)과 강만봉 순경(경위 추서)이 전사했다. 1949년 1월 18일 성산포경찰서에 편 입했다가 1957년 8월 26일 제주경찰서로 환원되면서 명칭도 구좌지서로 변경됐 다. 이어 1991년 8월 1일 구좌파출소로 개칭됐다. 4·3 당시 순직한 경찰관과 주 민을 추모하고자 이 비를 세운다. 2016년 9월 27일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 / 제주4·3경찰유족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