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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구좌면 생이나 진보인사들의 민주성지가 되지 않겠나. 그곳을 참배하고, 그 다음은 당연 히 반정부 데모로 이어지겠지. 다랑쉬굴은 유해가 수습된 뒤 온갖 유물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가 봉쇄되고 말 았다. 2002년 4월 5일, 제주민예총에서는 다랑쉬굴 유해 발견 10주년을 맞아 다 랑쉬굴 현지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해원상생굿을 마련해 희생자들을 위무 했다. 4·3연구소와 MBC는 20주년을 맞는 2012년 입구를 막고 있는 돌덩이를 치우고 안에 들어가 굴 내부 상태를 점검했다. 굴 속은 유해만 옮겨지고 나머지 유물들은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쇠솥, 놋그릇, 놋수저, 가위, 요강, 석 쇠, 화로, 구덕, 물허벅, 항아리 같은 생활도구와 톱, 나대, 호미, 쇠스랑 같은 농기 구, 그리고 토벌대가 난사했던 탄피도 눈에 들어왔다.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 유 물들은 언제면 온전히 수습돼 보존조치가 이루어질까? 그런 후 다랑쉬굴은 어떻 게 세상에 보여드려야할까? 다. 현황 다랑쉬굴은 1992년 5월 유해를 수습한 후 굴 속의 솥, 숟가락, 곡괭이 등 생활 도구와 안경 같은 유류품을 그대로 둔 채 입구를 큰 암석으로 막아 폐쇄했다. 현 재 굴 입구에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고, 찾아가는 길도 깨끗이 단장됐다. 해마다 많은 기행자들이 이곳을 찾아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라. 찾아가는 길 잃어버린 마을 다랑쉬마을의 표석이 설치된 곳 맞은편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 가다 보면 길 양쪽으로 늘어선 대나무 숲을 볼 수 있다. 그 길을 따라 한참을 들어 가면 조그만 주차장이 조성돼 있고, 그 안쪽 오솔길로 다시 들어 가면 굴이 있는 옴팡진 곳에 이르게 된다. 그런 다음 안내판을 찾으면 그 앞에 굴 입구를 막은 큰 돌덩이를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