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8page

650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5) 비석 - 南湖先生 李琯石 記念碑 (남호선생 이관석 기념비) 가. 소재지 서귀포시 남원읍 태위로 57 (위미리 3235번지) 위미초등학교 내 나. 개요 4·3 시기 희생된 이관석 교장의 기념비이다. 일제강점기 국민학교 설립은 1면 1개교가 원칙이었다. 남원면의 경우 남원리에 심상소학교가 설립돼 있어 남원면 서부지역 마을들은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위 미와 신례, 하례 지역 사람들이 진정을 올린 끝에 1939년 5월 위미공립소학교 설 립인가를 받았다. 학교는 1939년 6월 1일 개교했다. 이때 애월리 출신 이관석이 부임했다. 그는 위미국민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한 후 황무지 같았던 위미국민 학교의 부지를 닦고 학교건물을 세우며 이 지역 교육에 기여했다. 1946년 위미 리와 신례리, 하례리 주민들은 그 공로를 인정해 기념비를 세웠다. 그런데 4·3 발발 후인 1948년 10월 31일, 제주중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이던 이관석이 경찰에 의해 제주읍의 사라봉 인근에서 학살됐다. 곧 이 소식을 접한 위 미주민들은 학교에 세웠던 이관석 기념비를 땅 속에 묻어버렸다. 당시 상황을 현 봉협이 기억했다. “이관석 선생은 처음 초대 교장으로 와서 환경도 아주 좋지 않았는데 무척 고생하면 서 부지를 다듬어 좋게 학교를 지었어요. 그 공으로 위미, 신례, 하례 마을 주민들이 고 생을 많이 했다 해서 공로비를 세웠죠. (그 후) 그 분은 제주시 학무과장, 지금의 교육 감 수준인데 했어요. 그런데 그때 사상관계가 좀 있다고 해서 안 좋게 죽으니 그 비석 도 영향을 받아서, 왜 그런 사람 비석을 세웠냐고 하면 우리가 할 말이 없으니까 이제 묻었다가, (나중에) 다시 꺼내서 그것을 그대로 세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