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3page
645 남원면 에 떨면서 죽창을 들고 성곽을 지켰다. 당시에 쌓은 성곽은 서성동 전포교 1 앞부터 명금 포까지 뻗쳐지고, 위미초등학교 뒷 울타리(현존)로 동쪽으로 뻗어 서광사(曙光寺) 위쪽을 지나 마매기 앞 흙통 팽나무를 거쳐 2리 사무소 입구, 벌러니 바닷가까지 1, 2리를 애워 싸서 양민들은 그 안으로 모두 피난해 와서 살게 되었다. 한길에는 정문을 달아서 보초를 섰으며 성곽(城郭) 전역에도 보초를 세워서 방비를 튼튼히 하였다. 이후 폭도들의 출몰이 더 해지자 다시 외성을 쌓아 이중성을 만들고 그 사이에 가시덤불을 배어다 넣었다.” 1967년 항공사진을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성담 모습이 길게 잘 남아 있는 것 을 알 수 있다. 다. 현황 현재 위미초등학교 북쪽 울담으로 도로와 인접해 200m가량 정도가 아주 잘 남 아 있다. 학교 서북쪽 사거리에 안내판이 설치돼 있으나 낡아 보수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 성은 별도의 보호계획을 반드시 세울 필요가 있다. 위미리에는 이외에 도 위미리 2721, 2722번지 과수원 북쪽 밭담으로 약 100m, 위미리 4203-5번 지 과수원 담으로 30m 가량 남아 있다. 위미리의 성담 모습 (원 안의 길게 뻗은 짙은 검은 줄, 사진제공 국토지리정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