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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화리 세화리는 구좌읍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지만 멀리 다랑쉬오름 자락엔 다랑쉬마을도 있어 중산간 지역까지 펼쳐진 큰 마을이다. 일제강점기, 세화리는 1932년에 일어난 해녀항일운동의 본거지였다. 이 사건으로 지역의 많은 항일운 동가들이 옥고를 치른 경험이 있어 해방 후에는 진보적 성향도 강했다. 해방 직후 구좌면에서도 제주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인민위원회와 민청 같은 진보단체 를 조직해 새로운 사회를 이루려는 주민운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1947년 3·1기 념대회는 구좌면의 중심 마을인 세화리에서 개최됐다. 이날 대회에는 이웃 하도 나 평대 마을의 학생과 청년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1948년 4·3무장봉기가 발발하고, 토벌대의 만행이 격화되자 세화리는 김녕리와 더불어 구좌면 토벌대의 근거지로 부상했다. 그 이유는 지서가 세화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지만, 세화리가 구좌면 동부지역을 아우르는 중 심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후 세화 주민들은 세화지서로 끌려가는 사람들 과 세화지서에서 성산포 등지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됐다. 1948년 11월 중순이 지나면서 중산간 마을인 송당과 덕천에서 소개 온 사람들 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세화 주민들은 이들 소개민들이 여기저기 끌려가 고초를 겪는 것은 자주 보았으나 자신들에게 특별한 피해가 오지 않아 안심하고 643 구좌면